[칼럼] 협업이라는 이름의 불균형

함께하자는 말 뒤에 숨은 계산, 기회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청구서

 

제이앤엠뉴스 |  음악산업에서 ‘함께하자’는 말은 참 자주 등장한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말, 서로가 가진 강점을 합치자는 말,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하자는 말. 음악이라는 일이 본래 여러 사람의 능력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인 만큼 ‘협업’은 이 산업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중요한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수많은 제작과 유통 현장을 경험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협업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 상대방이 하나의 ‘기회’를 가지고 찾아온다. 좋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가능성이 있는 아티스트와 작업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와 업계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다 보면 이야기가 묘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완성된 프로젝트의 유통을 맡기겠다는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 제작비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함께 부담해달라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상대방이 대부분의 자금을 부담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전제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투자에 따른 권리와 수익배분을 이야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용과 위험은 상대에게 넘기면서 권리는 자신이 최대한 많이 가져가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것을 과연 협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투자란 단순히 돈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다. 실패했을 때 투자자가 그 손실을 감당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위험을 더 많이 부담하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기대수익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원칙이다.

 

기획을 했다는 이유, 곡을 만들었다는 이유,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게 하면서 자신의 권리는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함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위험과 보상의 균형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제안이 거절된 이후다.

어제까지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자던 사람이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 너무나 쉽게 다른 선택을 한다.

 

물론 모든 사업자와 창작자에게는 자신에게 유리한 파트너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계약으로 구속되지 않은 관계라면 다른 제작사나 유통사를 선택하는 것 역시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됐던 ‘함께’, ‘신뢰’, ‘오랫동안’이라는 말의 무게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조건을 받아줄 때만 유지되는 신뢰라면, 처음부터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거래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함께하자는 말 뒤에 숨은 계산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음악산업에서 또 하나 쉽게 간과되는 것이 있다.

바로 ‘정보의 가치’다.

 

한 사업자가 새로운 사업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계약구조를 만들고, 거래처를 확보하고, 권리관계를 공부하고, 정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한다.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수년 동안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고 실패를 반복하며 얻은 경험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자본에는 당연히 가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가 오랜 시간 축적한 노하우에는 가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자신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업을 준비하면서 그 사업을 먼저 구축한 사람에게 핵심적인 운영방법을 아무렇지 않게 묻기도 한다.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누군가가 정말 뼈를 깎아가며, 목숨걸고 이뤄 놓은 무언가를, 정식으로 사업제안을 통해 예의를 갖추고 다가오는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잃기도 싫으면서, 아무 노력도 없이 날름 하려는 그런 모습들은 생각보다도 만연하다. 

이게 얼마나 불건전하고 산업과 관계를 파괴하는 괴물같은 생각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노래의 경우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하여 쉽게 쉽게 가수들의 결과물만 보고 

그것을 단시간에 체득하려고 한다. 사실 그모습은 단시간에 이루어진게 아니다. 그 원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연구하고 훈련하고, 또 다시 시도하고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그런 결과물이 만들어진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냥 알맹이만 쏙 빼서 흉내낼수 있을까 하는 자세는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든다. 누군가는 수많은 시간을 다치고 그속에서 또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정상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그것이 더 가치가 있는것인데, 단순히 그 결과물만 보고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잠시잠깐 건드려보고 나는 왜 안되지 라는 아이러니한 생각을 갖는다.

 


 

아마 그들도 그들만 느끼는 자신들만의 가치있는 무언가가 있을것이다 그게 경험이든 노하우든 물건이든 가족이든.

그래서 반대로 되물어보고 싶다.

만약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 제안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그들도 달가워하지 않을것 이라는 생각이다.

 

때로는 직접 묻는 것조차 부담스러운지 제3자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 한다. 여기에서도 질문은 같다.

왜 누군가가 수년간 실패하며 얻은 지식은 공짜여야 하는가. 자본만 자산인 것은 아니다. 경험도 자산이고, 정보도 자산이며, 시행착오 역시 자산이다.

 

한 사람이 수년 동안 수많은 문제와 부딪치며 찾아낸 답을 다른 사람이 단 몇 시간의 대화로 가져간다면, 그 정보에는 적어도 그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가 따라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식으로 자문을 요청할 수도 있고,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사업적 협력을 제안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가진 것에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협업은 복잡하지 않다.

내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면, 나 역시 상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돈을 요구한다면 그 돈에 상응하는 권리를 제시하고, 정보를 원한다면 그 정보가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시간과 경험을 존중하고, 함께하겠다는 말을 했다면 최소한 그 말을 쉽게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협업은 한쪽이 얼마나 영리하게 더 많이 가져가느냐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교묘한 협상을 통해 더 많은 몫을 가져갈 수도 있다. 상대가 잘 모르는 부분을 이용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음악산업은 생각보다 좁다.

 

오늘의 의뢰인이 내일의 제작자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신인 아티스트가 몇 년 뒤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도 한다. 당장의 몇 퍼센트를 더 가져가는 것보다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신뢰를 얻는 것이 훨씬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기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 번쯤 그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가 돈을 내는가.
누가 실패의 위험을 부담하는가.
그리고 성공했을 때 누가 권리를 가져가는가.

 

이 세 가지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어도 그것은 좋은 협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때로는 기회처럼 건네진 것이 사실은 ‘기회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청구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협업은 상대가 가진 것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나는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계약서보다 먼저 갖춰야 할 협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함부로 대했던 사람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위치가 된다면 그때도 안면몰수하고 언제 그랬냐는듯

알랑방귀나 뀌는 그런 입장을 취할것인가? 그 모습이 자신이 생각해봤을때 우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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