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함께 무언가를 하다 보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기대했던 만큼 상대가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서운하게 들리고 서로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한 번의 갈등만으로 관계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문제의 내용은 매번 달라도 이상하게 한 사람의 수고와 입장은 작게 취급되고, 다른 사람의 불편함과 요구는 언제나 중요하게 다뤄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가령 오랫동안 알고 지낸 두 사람이 하나의 일을 함께했다고 생각해보자.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뿐 아니라 전체적인 결과를 위해 필요한 부분까지 맡아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정작 결과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상대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의 기여가 지나치게 크게 평가되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사자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게 다른 사람의 역할과 기여에는 엄격했던 상대가 정작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는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할 수는 있다.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고 사정도 있다.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는 관대하면서 상대의 부족함에는 엄격하고, 상대가 들인 노력에는 인색하면서 자신의 권리와 입장에는 민감한 태도가 반복되는 경우다.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가 있다. 본인 스스로 부족함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말만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냉정함과 존중의 부재는 같은 것이 아니다.
결과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과 그 결과를 만든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나 노력이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오랫동안 신뢰해온 관계라면 그 차이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낯선 사람에게 들었다면 흘려보낼 수 있었을 말과 태도도 자신이 오랫동안 믿었던 사람에게서 나왔을 때는 훨씬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오래된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감정도 조금씩 흐려진다. 굳이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좋았던 기억까지 모두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과거에 불편한 일이 있었더라도 새로운 일이 생기면 다시 돕고, 필요한 역할을 맡고, 이전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관계의 본질은 이런 순간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면서 앞으로 발생할 관리와 불편까지 고려해 상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수적인 업무까지 먼저 처리했다고 가정해보자.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상대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의도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일을 더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판단이었다.
상대가 일의 취지나 자신을 위해 추가로 처리된 수고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왜 자신의 권한과 관련된 일을 먼저 알리지 않았느냐는 점만 반복해서 강조한다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특히 먼저 유감을 표현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상호적인 반응조차 없이 자신의 불쾌함만 계속 강조한다면 당사자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관계까지 돌아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사과했느냐가 아니다.
한쪽의 수고는 너무 쉽게 당연한 것이 되고, 다른 한쪽의 불편함은 왜 언제나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더 복잡한 상황도 있다.
새로운 갈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과거에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크게 흔들었던 일이 다시 문제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다.
상대에게는 현재의 문제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그 일로 이미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결과를 둘러싼 태도에서도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시간이 지나 겨우 묻어두었던 일이 새로운 갈등을 통해 다시 소환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은 현재의 사건 하나만을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이번 일에서 서로 생각이 달랐구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질문을 바꾸게 된다.
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왜 상대의 부족함은 이해해야 할 사정이 되고, 나의 부족함은 평가의 대상이 되는가.
왜 내가 한 일은 쉽게 당연해지고, 상대가 불편하게 느낀 일은 반드시 설명해야 할 문제가 되는가.
그리고 왜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역할 역시 반복해서 한쪽의 몫이 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시작하면 생각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속은 확인할 수 없다.
그 사람에게 악의가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관계를 판단할 때는 의도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
한 번의 무례함은 실수일 수 있다.
한 번의 준비 부족 역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한 번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형태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구조가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개별 사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자신의 책임에는 상대의 이해를 기대하면서 상대에게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자신의 불편함에는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하면서 상대가 받은 상처에는 둔감하고, 상대의 도움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권리는 분명하게 강조하는 관계.
그 안에서 문제는 어느 한 번의 말다툼이 아니다.
관계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런 관계에 오래 머무르면 오히려 더 많이 배려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쉽다.
내가 예민한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이해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괜히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성찰이 언제나 자기책임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내 행동에서 더 나은 방법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것과 상대가 보여준 모든 태도를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 사람은 자신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설명할 의무가 없다.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들을 필요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오래된 관계라고 해서 그 원칙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관계일수록 서로가 상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존중을 생략하기 쉽다.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우리가 이런 사이인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런 익숙함이 한쪽에만 적용되기 시작하면 관계는 조금씩 달라진다.
한 사람에게는 이해와 인내가 요구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권리와 불편함을 표현할 자유만 남게 된다.
그것을 계속 친밀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도 관계의 현재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과거에 존경했던 사람이 지금도 반드시 존경할 만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는 것은 아니다.
좋았던 기억이 있다고 해서 현재의 불편함을 없는 일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지금 관계가 불편해졌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좋은 순간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좋았던 것은 좋았던 것으로 남겨두고, 지금의 관계는 지금의 행동으로 판단하면 된다.
때로는 그것이 오래된 인연을 가장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일 수 있다.
관계에서 거리를 둔다는 것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대를 벌주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속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의 위치를 다시 정하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모든 관계를 끝까지 유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
특히 한 사람의 노력과 수고는 계속 작게 취급되면서 다른 사람의 요구와 불편함만 크게 다뤄지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느냐가 아니다.
서로의 기여를 인정하는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비슷한 기준을 상대에게도 적용하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감정만큼 상대의 입장도 바라보는가.
그리고 상대가 먼저 관계를 회복하려 손을 내밀었을 때 자신 역시 한 걸음 움직일 수 있는가.
존중은 말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들에서 드러난다.
한 사람의 수고가 계속 작아지고 다른 사람의 불편함만 계속 커지는 관계라면, 어쩌면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이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동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누가 계속 이해했고, 누가 계속 이해받아왔는지를 돌아보는 일.
그리고 그 답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오래된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관계를 예전과 같은 거리에서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관계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것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상대의 불편함을 듣는 만큼 자신의 상처 역시 가볍게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공정함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