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우리가 매일 듣는 음악에는 가수의 목소리만 존재하지 않는다. 드럼과 베이스가 리듬을 만들고 기타와 건반이 곡의 색깔을 채운다. 때로는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연주 하나가 노래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이 한 곡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대부분 가수다. 작곡가와 작사가까지 알려지는 경우는 있어도 실제 음원에서 악기를 연주한 세션 연주자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다.
앨범의 크레딧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실제 음악 제작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 곡을 완성하고 있을까.
제이앤엠뉴스는 한 현직 세션 연주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음원 한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세션 연주자의 역할, 그리고 가상악기와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달라지고 있는 음악 제작 현장을 들여다봤다.
Q. 일반 대중에게는 ‘세션 연주자’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나요?
A. 쉽게 이야기하면 음원이나 공연에 필요한 악기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실제 작업에서는 단순히 악보에 적힌 음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역할을 해요.
곡을 받았을 때 프로듀서가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거나 “후렴에서 확 터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확한 연주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느낌을 설명하는 거죠. 그러면 그걸 연주자가 자기 악기로 해석해야 합니다.
결국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음악을 실제 소리로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음원 한 곡의 세션 작업은 보통 어떻게 시작되나요?
A. 요즘은 대부분 파일을 먼저 받아요. 데모 음원하고 가이드, 코드나 악보 같은 자료를 받고 곡을 들어봅니다.
그때부터 그냥 내 파트만 듣는 게 아니라 보컬이 어디에서 힘을 주는지, 다른 악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같이 봐요. 내가 너무 많이 연주하면 오히려 보컬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녹음 전에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프로듀서와 이야기하면서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Q. 악보에 있는 것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아닌가요?
A. 작업마다 달라요. 정확하게 편곡이 끝나서 그대로 연주해달라는 경우도 있고, 코드 정도만 주고 자유롭게 해달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세션의 재미는 후자에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코드 진행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특히 드럼이나 베이스, 기타 같은 악기는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한 음을 더 치느냐 안 치느냐, 박자를 아주 조금 앞에서 가져가느냐 뒤에서 가져가느냐에 따라서도 곡의 느낌이 달라져요.
Q. 한 곡을 녹음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요?
A. 정말 천차만별이에요. 빨리 끝나는 곡은 한두 시간 안에도 끝나고, 수정이 많으면 훨씬 오래 걸립니다.
재미있는 건 어려운 곡이라고 무조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에요. 연주는 어렵지 않은데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곡도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했는데 프로듀서가 “좋은데 뭔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그때부터 어려워지는 거죠.(웃음)
Q. 세션 연주자 입장에서 ‘잘된 연주’는 무엇인가요?
A. 예전에는 실수 없이 정확하게 연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내 연주가 돋보이는 것보다 곡이 좋아져야 해요.
연주자는 욕심이 있으니까 멋있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그런데 어떤 곡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좋은 연주일 수도 있습니다. 한 음을 덜 치는 게 곡을 살릴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얼마나 잘 쳤느냐’보다 ‘이 연주가 이 노래에 필요한가’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Q.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곡은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곡도 있나요?
A. 있기는 해요. 멜로디가 귀에 바로 들어오거나 녹음하면서도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곡들이 있죠.
그런데 그게 실제 성적하고 항상 맞지는 않아요.
“이건 정말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곡이 조용히 지나가기도 하고, 그냥 평범하게 작업했던 곡이 갑자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걸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음악의 성공을 작업하는 사람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Q. 자신이 참여한 음악이 카페나 거리에서 우연히 나오면 어떤 기분인가요?
A.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했어요.(웃음)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음악을 듣고 있는데 나는 어느 부분에서 어떤 악기를 썼는지 다 알고 있잖아요.
특히 내가 고민해서 만든 부분이 나오면 혼자 속으로 ‘저거 내가 한 건데’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대부분 모르죠. 세션 하는 사람들의 재미이면서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Q. 상당히 공을 들였는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곡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훨씬 많죠. 오히려 그런 곡이 더 많다고 봐야 합니다.
정말 좋은 연주자들이 참여하고 녹음도 잘됐고 노래도 좋은데 몇 달 뒤에 조회수를 보면 생각보다 너무 적은 경우가 있어요.
처음에는 아쉬웠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받아들입니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과 그 음악이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요즘은 특히 하루에도 음악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잘 만드는 것만으로 알려지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Q. 현실적인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세션 연주료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A. 정해진 하나의 기준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연주자의 경력이나 작업 규모, 녹음 방식, 수정 범위 등에 따라 달라져요.
한 번 녹음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수정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요즘에는 직접 스튜디오에 모이지 않고 각자 작업실에서 녹음해서 파일을 보내는 방식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예전과 비교하면 작업 방식 자체가 상당히 달라졌어요.
Q. 가상악기가 발전하면서 세션 연주자의 일도 영향을 받고 있나요?
A. 당연히 있습니다. 예전에는 실제 연주자를 불렀을 부분을 가상악기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특히 제작비가 많지 않은 프로젝트에서는 차이가 더 크죠. 가상악기 자체의 품질도 굉장히 좋아졌고요.
그렇다고 가상악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작업하면서 많이 사용하거든요. 중요한 건 실제 연주가 필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하는 것 같아요.
Q. 최근에는 생성형 AI까지 음악 제작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나요?
A. 처음에는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다가 사람을 안 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그런데 실제로 사용해보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AI가 만들어주는 결과가 굉장히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고요.
그래서 단순히 일정한 패턴을 연주하는 역할만 한다면 사람 연주자의 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제작자가 “여기 뭔가 이상한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그걸 같이 찾아내고, 곡의 흐름을 읽고 다른 선택을 제안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결국 연주자도 ‘잘 치는 사람’에서 ‘음악을 같이 만드는 사람’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AI가 사람의 연주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A. ‘절대 못 한다’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니까요.
다만 음악 제작에는 결과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녹음하면서 “이거 한번 이렇게 해볼까요?”라고 누군가 제안하고, 그걸 듣던 사람이 “그게 더 좋은데요?”라고 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는 순간들이 있어요.
좋은 음악이 처음 계획대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AI가 그런 과정까지 어디까지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들면서 생기는 우연이나 판단이 음악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결국 앞으로 세션 연주자에게 필요한 능력도 달라질까요?
A. 이미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기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녹음 프로그램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작업실에서 좋은 품질로 녹음해서 보낼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해요.
프로듀서가 원하는 걸 빨리 이해하는 사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찾게 됩니다. 결국 같이 작업하기 편하면서 결과도 좋은 사람이 오래 가는 것 같아요.
Q. 세션 연주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악기를 잘 치는 것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정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인터넷만 봐도 놀라운 연주자가 계속 나오잖아요.
그 안에서 오래 일하려면 음악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컬도 들어보고 편곡도 공부하고 녹음도 해보고 다른 악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사람과 하는 일이니까 기본적인 약속이나 태도도 정말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어떤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이름이 유명한 연주자도 좋겠지만 저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 찾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이 곡은 이 사람한테 부탁하면 잘 만들어줄 것 같다.”
그런 믿음을 주는 사람이요.
대중은 제 이름을 몰라도 제가 연주한 곡을 오랫동안 좋아해 준다면 그것도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등장한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모인다. 세션 연주자는 단순히 악보에 적힌 음을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곡을 해석하고 제작자의 생각을 실제 소리로 구현하는 음악 제작 과정의 참여자라는 것이다.
가상악기에 이어 AI까지 음악 제작 현장으로 빠르게 들어오면서 이들의 역할 역시 변하고 있다. 정확한 연주 자체의 가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달라질 수 있다. 반면 곡 전체를 이해하고 다른 제작자들과 소통하며 순간마다 적절한 음악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오히려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가 이어폰으로 듣는 몇 분의 음악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선택이 숨어 있다.
어떤 드럼 리듬을 선택할지, 베이스를 어느 순간 비워둘지, 기타 한 음을 얼마나 오래 남겨둘지. 청취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작은 판단들이 모여 하나의 음악이 된다.
스트리밍 화면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지만 오늘 우리가 듣는 음악 안에도 누군가의 연주가 남아 있다.
우리가 매일 듣지만, 이름은 잘 알지 못했던 음악가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