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흔히 폭발적인 고음이나 넓은 음역, 정확한 테크닉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떤 가수의 노래는 그런 기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아도 한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고, 화려한 기교가 없는데도 노래가 끝난 뒤 한동안 다음 곡을 재생하기 어려워지는 음악이 있다.
이소라의 노래가 그렇다.
그의 음악에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순간이 많지 않다. 오히려 울음을 삼키듯 노래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 여백을 남긴다.
그런데 바로 그 여백 때문에 듣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꺼내게 된다.
이번 제이앤엠뉴스 뮤직큐레이션은 이소라의 노래 가운데 서로 다른 시간과 감정을 품고 있는 다섯 곡을 골랐다.
‘믿음’ → ‘제발’ → ‘바람이 분다’ → ‘Track 9’ → ‘신청곡’
사랑을 믿었던 시간에서 시작해 붙잡고 싶은 이별을 지나고, 결국 떠나간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 끝에 음악 자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순서다.
1. 믿음
사랑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간
이소라의 음악을 이별부터 시작하지 않고 싶었다.
모든 이별 앞에는 한때 그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에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가질 수 있는 조용한 확신이 있다.
이소라의 목소리는 사랑을 과장하지 않는다. 행복을 크게 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숙하게 한 사람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후의 노래들을 함께 들으면 ‘믿음’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랑이 끝난 뒤 가장 아픈 것은 헤어진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한때 정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기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음 노래가 시작된다.
2. 제발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늦게 끝내는 이별
이소라를 대표하는 곡을 이야기할 때 ‘제발’을 빼기는 어렵다.
이 노래의 힘은 감정의 크기보다 감정을 참는 방식에서 나온다.
이별 노래는 흔히 떠난 사람을 원망하거나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제발’에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거대한 절규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더 위태롭게 들린다.
사람이 정말 힘들 때 항상 크게 우는 것은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어떤 장소에서, 익숙한 냄새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 한 곡에서 무너질 때도 있다.
‘제발’은 바로 그 순간에 가깝다.
이소라는 노래를 대신 울어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도록 기다린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의 이별과 다시 만난다.
3. 바람이 분다
사람은 떠났는데 계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온다
‘제발’이 이별 한가운데에 있는 노래라면 ‘바람이 분다’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미 관계는 끝났다.
붙잡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평범하게 흘러간다.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뀐다.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살아간다. 한 사람의 세계에서는 무언가가 완전히 무너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된다.
이별 뒤에 찾아오는 이상한 감각이다.
‘바람이 분다’에서 이소라는 그 공백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모든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피아노와 악기 사이에 머문다. 노래하지 않는 순간조차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곡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했는가만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리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이소라 음악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다.
4. Track 9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소라의 음악이 단순히 ‘슬픈 발라드’에 머물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는 곡 가운데 하나가 ‘Track 9’이다.
제목부터 특이하다.
거창한 이름 대신 앨범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번호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노래가 바라보는 곳은 깊다.
사랑과 관계를 지나 결국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사람은 상처받으면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다. 누가 떠났고, 누가 자신을 아프게 했으며, 어떤 일이 잘못됐는지를 되짚는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는 결국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Track 9’은 답을 쉽게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듣게 된다.
젊었을 때 들었을 때와 몇 년 뒤 다시 들었을 때 의미가 달라지는 노래가 있는데, ‘Track 9’은 그런 음악에 가깝다.
듣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노래의 빈 공간을 조금씩 채우기 때문이다.
5. 신청곡
결국 누군가의 외로운 밤에 남는 것은 음악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곡은 방탄소년단 슈가가 피처링한 ‘신청곡’이다.
앞선 곡들이 자신의 사랑과 상처, 내면을 바라봤다면 ‘신청곡’에서는 시선이 조금 더 넓어진다.
혼자 운전하는 사람, 잠들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
세상에는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시간에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한 곡이 그날따라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릴 때도 있다.
음악의 묘한 힘이다.
가수는 청취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청취자 역시 노래를 만든 사람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 몇 분 동안은 서로의 마음이 연결된다.
‘신청곡’은 그 관계를 노래한다.
그래서 이번 큐레이션의 마지막에 놓고 싶다.
‘믿음’에서 한 사람을 사랑했던 목소리가 ‘제발’과 ‘바람이 분다’를 지나고, ‘Track 9’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 뒤 마지막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밤으로 향한다.
이소라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창력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는 뛰어난 보컬리스트다.
하지만 이소라 음악의 힘을 음역이나 성량만으로 설명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어떤 단어를 얼마나 길게 붙잡을 것인지, 어디에서 숨을 쉴 것인지, 어떤 문장은 힘을 빼고 흘려보낼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에서 노래하지 않을 것인지.
그 선택들이 모여 이소라의 음악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여백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그 빈 공간이 비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곳에 오래전 헤어진 사람을 넣고, 누군가는 떠나간 가족을 떠올린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같은 노래를 들었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되는 이유다.
좋은 음악이 반드시 감정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음악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 듣는 사람의 마음이 앞으로 나온다.
이소라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노래해왔다.
슬프다고 끊임없이 말하지 않아도 슬픔을 알게 하고, 외롭다고 외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가수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때로 가장 깊은 곳까지 도착한다.
이소라의 음악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누군가의 밤에 재생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