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앤엠뉴스 | 누군가를 잊으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그 사람이 더 생각날 때가 있다.
다른 일을 해보기도 하고 잠을 청해보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이제 그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음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장범준이 ‘월말 장범준’ 2026년 8월호로 내놓은 ‘어차피 저차피’는 바로 그 상태를 노래한다.
거창한 사건도, 복잡한 서사도 없다.
한 사람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잠들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내일도 다시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는 마음.
노래는 그 단순한 감정 주변을 계속 맴돈다.
‘어차피’라는 말에 숨어 있는 포기와 미련
제목부터 장범준답다.
‘어차피 저차피’.
우리가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무엇을 선택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을 때 툭 던지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는 그 말이 사랑 앞에 놓인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생각날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보려 해도 결국 다시 떠올릴 것 같다.
그렇다면 애써 외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는 묘한 체념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사람의 체념은 아니다.
오히려 포기하려고 하는데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사람의 체념에 가깝다.
머리로는 관계가 끝났거나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감정은 아직 그 결론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라는 말은 무심하게 들리면서도 그 안에는 꽤 많은 미련이 숨어 있다.
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할까
‘어차피 저차피’의 가사는 유난히 반복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상태가 되풀이되고, 두근거리는 마음도 계속 등장한다. 잠 못 드는 밤과 상대를 생각하는 상황 역시 반복된다.
일반적인 노래라면 같은 의미를 다른 표현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범준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같은 말을 다시 한다.
그리고 또 한다.
이 반복은 단순한 작사 방식이라기보다 노래 속 인물의 심리처럼 들린다.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실제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다시 연락해볼까.’
그러다가 결국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같은 기억을 여러 번 꺼내보고 이미 내린 결론을 다시 고민한다.
노래의 반복적인 구조가 바로 그런 생각의 무한 반복을 닮았다.
두근거리는데 마음은 ‘절뚝거린다’
이 곡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표현은 두근거리는 마음과 절뚝거리는 마음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근거림은 일반적으로 사랑의 시작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심장이 빨라지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설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음이 동시에 절뚝거린다.
설렘과 상처가 한곳에 있는 것이다.
아직 좋아하기 때문에 두근거리지만 이미 무언가가 어긋났기 때문에 제대로 걸어가지 못한다.
사랑은 남아 있는데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이 노래의 두근거림은 마냥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이 된다.
장범준은 왜 평범한 말을 노래로 만들까
장범준의 음악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일상적인 언어다.
문장을 어렵게 꾸미거나 감정을 거대한 표현으로 포장하기보다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법한 말을 그대로 음악 안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저차피’ 역시 그렇다.
노래의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생각나고, 잠이 오지 않고, 마음이 두근거리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다.
감정은 문학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횡설수설하기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혼자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장범준은 그런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말투를 노래로 옮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잘 쓴 문장을 발견했다기보다 ‘나도 저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데’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잊지 못한다면 그냥 생각해도 되는 걸까
‘어차피 저차피’는 결국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잊는 방법을 찾아내지도 않고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까지 상대는 계속 생각난다.
우리는 흔히 이별한 뒤 빨리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지우고 연락처를 삭제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삭제 버튼이 없다.
어떤 기억은 없애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어쩌면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오늘 생각났으면 오늘 생각하고, 내일 또 떠오르면 잠시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기억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에는 생각하는 횟수가 조금 줄어 있을지도 모른다.
장범준의 ‘어차피 저차피’는 그 과정을 앞당기려 하지 않는다.
아직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아직 아프면 아픈 대로 그 자리에 잠시 머문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 ‘어차피’는 포기의 말처럼 시작하지만 묘하게 솔직한 인정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어차피 오늘도 생각날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쯤은 그냥 마음껏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